
넷플릭스 신작〈은중과 상연〉이 공개되자마자 1~3회를 정주행 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드라마 속 장면들이 제 기억을 자극하며, 잊었던 조각들을 다시 맞춰가는 기분이에요.
화려한 판타지 세계관이나 초능력 히어로물에 지루함을 느끼던 제게, 〈은중과 상연〉은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10대에서 40대까지 이어지는 삶의 궤적을 두 여성의 관계로 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제 인생의 어느 순간들과도 겹쳐졌거든요. 특히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배경의 사실적인 묘사는 저에게 잊고 있던 시절을 다시 소환해 주었고, 그 덕분에 드라마가 남긴 여운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줄거리 요약
현재 (40대, 다시 시작된 인연)
류은중(김고은)과 천상연(박지현)은 오랫동안 절연 상태였다. 그러나 영화사 대표가 된 상연이 시상식에서 은중을 언급하면서 관계가 다시 이어진다. 이후 상연은 은중에게 말기암 사실을 고백하고, 스위스로 동행해 안락사를 도와 달라 부탁한다. 충격에 빠진 은중은 상연의 재산 증여 소식까지 듣게 되며 혼란과 분노 속에 상연을 찾아간다.
과거 (1990년대 초반, 어린 시절의 첫 만남)
1992년 초등학교 시절, 새 전학생 상연은 은중에게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다. 작은 오해와 갈등 속에서 두 사람의 인연은 서툴게 꼬여 갔다.
중학교 시절 (1996년, 우정과 질투, 첫사랑)
중학교에서 재회한 은중과 상연은 절친이 된다. 그러나 은중이 상연의 오빠 김상학(김재원)을 짝사랑하게 되고, 상연의 가족들이 은중에게 대하는 모습에 상연은 알 수 없는 질투와 갈등이 느낀다. 은중은 상학에게 고백 대신 네잎클로버 편지를 남기지만, 상학은 군대 가기 전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다.
대학 시절 (2001년, 운명처럼 다시 얽히는 인연)
대학생이 된 은중은 상학이 남긴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서 사진 동아리에 가입한다. 그곳에서 상학 오빠가 이름이 똑같은 상학 선배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1년 뒤 같은 동아리에 신입생으로 등장한 상연과 다시 얽히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개인적인 감상평 – 나의 경험과의 연결성
장면 1. 신도시와 전학생의 기억
상연이 전학 오던 장면은 제게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 시절 신도시로 이사하며, 새로운 환경 속에서 관계를 만들어갔거든요. 마치 낡은 책의 누런 종이를 펼쳤을 때 숨겨진 기억이 되살아나듯, 잊고 있던 제 과거도 선명히 떠올랐습니다.
장면 2. 질투와 동경이 교차하는 우정
은중과 상연 사이에는 늘 우정과 경쟁심이 함께했습니다. 저 또한 10대 시절, 친구의 장점에 동경을 느끼면서도 질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 복잡한 감정을 안고 ‘우정의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장면 3. 교실 속 보이지 않는 벽
드라마 속 선생님이 학생의 가정환경을 묻던 장면은 특히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90년대 교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죠. 아파트 평수, 부모 학력, 직업 같은 질문은 10대에게 상처였고, 친구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드라마가 그 시절의 공기를 세밀하게 재현해 낸 덕분에 잊고 있던 현실의 폭력성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장면 4. 사진, 시간을 채집하는 일
“사진은 시간을 채집하는 일”이라는 대사는 오래 남습니다. 극중 천상학은 은중에게 말합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거야. 아주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안에 진짜 진실이 담겨 있어. 근데 사진은 또 거짓이기도 해. 짧은 순간이니까 얼마든지 거짓을 진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거지.”
은중, 상연, 상학의 관계가 사진을 매개로 이어졌는데요. 저는 사진을 대할 때마다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저는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진짜 제 모습과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인지, 혹은 짧은 순간의 거짓이 영원한 진실처럼 남는 게 불편해서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군요.
다음 편을 앞두고 떠오른 질문들
- 천상학은 왜 그렇게 사진에 집착했을까? 그의 죽음과 ‘M’의 정체는 무엇일까?
- 대학 사진 동아리에서 상연과 은중의 재회는 정말 우연이었을까?
- 천상연은 왜 은중에게 마지막을 부탁하고, 모든 것을 남기려 하는 걸까?
1~3회 감상 후 저의 총평입니다.〈은중과 상연〉은 제게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잊었던 기억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입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제 감상을 바꾸어 갈 수도 있겠지만, 이 드라마는 단순한 정주행이 아니라 제 기억과 시간을 함께 거닐며 천천히 사유하고 싶습니다.